여수산단, '물리적 통합' 없이 조용한 재편… 원료 거래 등 재배치
LG화학 SM 직생 중단, 롯데·수입·여천NCC로 조달 분산 여천NCC 3공장 멈춤…적자 속 고정비 절감·효율화
[더퍼블릭=양원모 기자] 대형 인수 합병이 부진한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조용히 '화학적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나프타 분해 설비(NCC) 합작을 추진하고 있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 사례와 달리 감산·라인 정지·원료 거래 재배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법적 합병 없이도 재편 효과가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해 5월 여수 스티렌모노머(SM) 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SM은 고부가 합성수지(ABS) 원료로, ABS 수익성은 유지되고 있다. 다만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SM 가격이 급락하면서 외부 구매가 더 경제적이라고 판단해 직접 생산을 접었다.
현재 LG화학은 연간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에서 24만t, 수입산 24만t, 여수 여천NCC에서 약 9만t의 SM을 공급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쟁사이자 인접 기업에서 원료를 조달하는 방식으로 비용 최소화에 나선 모습이다.
설비 측면에서도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DL케미칼과 한화솔루션이 50대 50으로 합작한 여천NCC는 지난달 3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여천NCC는 에틸렌·프로필렌 등 범용 제품을 모회사에 공급해 왔으나, 적자 지속에 따라 고정비 절감과 효율화를 위해 일부 설비를 멈췄다.
이 같은 감산, 특정 제품 생산 중단, 경쟁사 간 원료 거래 확대는 산업 구조를 비가시적으로 바꾸고 있다. 다만 이는 '단기 처방'이란 지적이다. 고부가 제품 개발과 친환경 소재 전환 지연으로 장기 경쟁력 확보가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황 악화로 투자 여력이 위축된 상황에서 범용 제품 의존이 이어지면 비슷한 구조조정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여수산단 내 합작 논의가 본격화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이해관계의 복잡성이 있다. 여천NCC는 부도 위기를 겪었고, 모회사인 DL과 한화 간 갈등이 현재 진행형이다. 정유사 GS칼텍스는 석유화학 업체들과 수직 계열화가 가능한 주체지만, 절반 지분을 미국 쉐브론이 보유하고 있어 논의 진전이 쉽지 않다.
정부는 재편 필요성을 명확히 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4일 한화오션 거제조선소를 찾아 "무임승차하는 기업에는 단호히 대응하겠다"며 석유화학 산업 재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미 다수 기업이 감산과 설비 중단 등 자구책을 시행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어떤 지원안을 제시할지가 과제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