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모펀드 규모 급감, 왜?…엑시트 시장 위축→세컨더리 시장 호황
글로벌 연기금·국부 펀드, 투자 전략 재조정 국내 기업 인수 시장도 '타격'
[더퍼블릭=안은혜 기자] 지난 10년 간 기업 인수합병(M&A)와 투자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해온 글로벌 사모펀드(PE) 산업에 신규 투자금이 크게 감소했다. 이른바 '스마트 머니' 이탈로 한국 스타트업계도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분석이다.
19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 세계 PE 결성 규모는 약 2230억 달러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20% 감소했다. 지난해도 같은 기간 전년 대비 24% 줄었다.
반면, 글로벌 PE 드라이 파우더(투자하기로 약정됐지만 집행되지 않은 투자 준비금) 잔고 규모는 올해 초 기준 약 2.5조 달러로 집계됐다. 투자 펀드들이 투자 시기를 늦추면서 글로벌 투자업계의 자금 순환이 둔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PE 투자금이 감소한 주요 원인으로는 투자금 출자자(LP)들의 자금 할당 축소와 고금리, 기존 펀드에서의 배당 감소 등이 꼽힌다.
글로벌 회계·컨설팅법인 언스트&영(EY·Ernst&Young) 분석에 따르면 기존 펀드 자산 약 3만 개가 아직 투자금 회수(엑시트·Exit)를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35%는 보유기간 6년을 초과한 만기 연장 자산으로 추정된다.
장기 미회수 자산이 많아져 LP에 돌아가는 현금흐름(DPI)이 정체됐고, 신규 펀드 출자 여력이 줄었다는 분석이다. DPI는 투자금 대비 얼마나 회수돼 LP에 분배되었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최근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지난 2021년 전 세계 PE 시장에서 1조70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이 회수됐지만 2023년에는 7440억 달러로 급감했다. 이에 따라 LP들은 기존 펀드의 DPI를 주시하면서 유동성 확보에 민감해졌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최근 전 세계 M&A 심사 강화와 기업결합 규제, IPO 시장 부진 등이 겹치면서 PE가 보유한 기업 상장이 어려워졌거나 매각하고 있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의 '2025년 글로벌 M&A 트렌드: 중간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세계 M&A 시장의 거래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했다. 미국 행정부의 강도높은 정책으로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하반기에도 M&A에 비우호적 환경이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엄격한 기업결합 심사와 빅테크의 인수 제한 등으로 전략적 스타트업 투자가 줄었고, 기술주 조정 후 기업공개(IPO) 창구도 좁아졌다. 이런 요인들이 PE 투자금 회수에 부담이 됐다.
LP로부터 회수 지연과 LP의 유동성 압박은 세컨더리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세컨더리 시장은 벤처캐피탈(VC)이 투자해 확보한 기업 지분을 재판매하는 유통 시장을 말한다.
지난해 전 세계 PE 세컨더리 거래 규모는 전년 대비 45% 증가한 역대 최고치 1620억 달러에 달했다. 2025년 상반기에도 세컨더리 시장은 약 1020억 달러 규모 거래가 이뤄지며 호황을 이어갔다.
이 가운데 47%가 GP(운용사) 주도 거래였다. GP 주도 세컨더리는 GP가 거래를 주도해 기존 펀드의 만기를 연장하거나 특정 자산을 골라 새로운 펀드로 이관하는 거래다.
이같은 현상은 기존 펀드 LP에는 유동화 기회를 주고, GP는 우량 자산을 새 펀드에 담아 보유 기간을 늘려 추가 운용보수를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GP 주도 거래 시 GP가 매도자 겸 매수자이기 때문에 자산 가격을 책정하는데, LP 입장에서는 제값을 받기 어려워 손해가 불가피하다.
일각에서는 펀드 간 '자산 돌려막기'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부실 자산을 새로운 곳에 옮겨놓고, 문제 해결을 미루는 것일 수 있다. 펀드 만기와 성과 산출을 지연시켜 투자 과정의 투명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 세계 유수의 연기금과 국부 펀드들은 최근 사모펀드 투자 전략을 재조정하며 신중 모드로 돌아섰다. 글로벌 PE 뉴스 전문 플랫폼 'Private Equity International(PEI)'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 세계 기관투자가의 31%가 PE 투자 비중을 축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S&P 글로벌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전 세계 연기금의 62%가 PE 목표 배분 비중을 초과한 오버얼로케이션(overallocation) 상태에 놓여 있다. 배당 횟수 지연으로 PE 자산 비중이 부풀려진 결과다. 사모펀드에 적극적이었던 중동 국부펀드조차 유동성 관리에 나서고 있다.
이는 한국의 국민연금(NPS), 한국투자공사(KIC) 등 국내 기관의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민연금 기금위원회는 2025년 운용계획 변경안에서 사모투자 위탁운용사 선정기준에 ESG·사회책임 요소를 강화하는 등 질적 평가 잣대를 높였다. 이는 단순 수익률 위주의 출자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문제 소지가 적은 투자를 선호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KIC 역시 해외 대체 투자 포트폴리오를 조정했다. 최근 인프라·부동산 등 실물자산 쪽 비중을 늘리고 상대적으로 바이아웃 PE 비중을 낮추는 경향을 보였다. 국부펀드로서 장기 안정성을 중요하게 보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사모 자본의 유출은 국내 기업 인수·벤처투자 시장에도 영향을 준다. 지난 2017~2021년 해외 PE 펀드들은 한국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를 했지만 최근 글로벌 펀드들의 투자 여력 감소와 중국 등 신흥시장 리스크 회피로 한국 대상 대규모 거래는 줄어드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