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라운드 시대 온다"…세계 각국 인플레이션 심화 우려

글로벌 무역질서 붕괴…한국도 '흔들'

2025-08-11     안은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더퍼블릭=안은혜 기자] 미국이 관세 협상으로 마련한 무역 질서를 '트럼프 라운드'라고 이름 짓고 30년을 이어온 세계무역지구(WTO) 체제 종식을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세계 무역 질서의 대변혁과 미국의 부활을 예고하고 나섰다.

미국의 무역 정책을 총괄하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는 지난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쓴 기고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입된 브레턴우즈 체제와 이후 WTO 설립으로 이어진 우루과이 라운드 등 미국에만 불리하게 작용한 세계 무역질서를 개혁하려 한다"면서 "우리는 이제 트럼프 라운드를 목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2일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세계 각국과 진행한 무역 협상을 과거의 다자 무역 협상에 빗대어 '라운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1995년 시작된 WTO는 글로벌 교역 핵심 기구로, 무역 자유화 등 지금의 다자무역체제의 근간이다. WTO 체제는 사실상 트럼프 1기 때 유명무실해진 데 이어 이번에 붕괴 수순을 밟게 됐다. 

트럼프발 관세를 통한 각국의 무역장벽 철폐로 이제 다자교역은 물론 양자 자유무역협정(FTA)마저 무력화된 상황이다.

그리어 대표는 "WTO가 주도하고 명목상으로만 166개 회원국이 무역 정책을 규제하는 시스템은 지속 불가능하다"며 "이 때문에 미국은 산업 일자리와 경제안보를 잃었고 최대 승자는 중국이었다"고 관세전쟁을 시작한 배경을 밝혔다.

이어 "현재의 질서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폭발적으로 키우고, 미국이 초강대국일 수 있게 한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며 "관세를 통해 무역적자를 재조정함으로써 미국은 오랜 난제를 풀 수 있는 대담한 리더십을 선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간 WTO가 해왔던 중재 역할도 이젠 미국이 맡을 것이며, 새로운 무역 질서에선 한국과 유럽의 대미 투자가 미국의 제조업 부활을 가속화하고, 한국이 쇠퇴한 미국 조선산업의 재활성화를 도울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국가 안보와 국익을 우선하는 공급망 재편을 의미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출범 후 일괄 관세와 상호 관세 부과 등 전방위 관세 공격에 나섰다. 미국 재무부는 달러 패권을 활용해 대중국 수출통제 및 제재도 강화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인사 구상을 마쳤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환율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는 말도 나온다. '탈세계화'를 공식화하고 자국 중심의 경제블록 재편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중 무역 마찰과 미국의 대중 수출통제 대응을 위해 중국은 반도체 등 핵심 기술 자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을 활용한 아시아권 경제통합도 주도하고 있다. 

유럽은 '개방형 전략 자율성'을 내세워 대외 의존 축소에 나섰고, EU는 반도체·배터리 등 분야에서 자체 역내 생산과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했다. 

일본은 미국과의 파트너십을 도모하면서 무역에 있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RCEP에 모두 참여해 양쪽 블록과 교역을 확대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글로벌 경제의 '지정학적 디커플링(공급망 분리)'을 야기시켰다는 목소리가 높다. 핵심 품목을 스스로 공급하거나 동맹국으로부터만 조달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기조를 유지한다면 이는 효율성 저하와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반도체 부문에서 미·중 기술 디커플링으로 양쪽은 각각 최소 1조 달러 이상의 투자와 연간 450억~1250억 달러의 추가 운영비가 더 필요하다. 반도체 가격은 35~65% 인상 효과가 나타난다.

세계 경제의 블록화는 한국에 직·간접적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반도체는 대중 수출길이 막히고 미·중 양쪽의 압력 속에 중국의 한국기업 공장의 운영 불확실성이 커진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로 한국산 배터리 현지 생산을 요구받는 등 자동차 산업도 영향권에 있다. 석유화학 분야는 대중국 수출 둔화와 보호무역 여파로 수익성이 약화하기 쉽다. 철강 등 소재 산업도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로 대미 수출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다만, 국내 물가 영향 전망은 엇갈린다. 과거 한국은 공급망 교란에 따른 비용 상승이 물가에 제한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2021~2022년 글로벌 공급망 병목으로 제품 가격이 뛰었지만 한국 소비자물가는 연간 5.1% 상승에 그쳐 선진국 대비 낮았다.

이는 정부의 유류세 인하, 공공요금 동결 등 정책 대응과 원화 강세 시기의 수입 물가 완충 효과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후 지정학적 인플레이션 지속은 물가 상승 압박을 가져온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은행(ECB) 총재는 "공급망 분절화는 수입 물가를 올려 세계 각국의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며 "에너지 안보 강화, 국방비 증대 등의 구조적 변화는 중기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