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놓고 내정 간섭… 前 대통령 기소한 브라질에 관세 50% '폭탄'
보우소나루 재판 중단 요구하며 기존 10%에서 40%p 인상 룰라 "주권국가 모욕 용납 못해" 강력 반발 브릭스 겨냥한 관세 압박 해석도
[더퍼블릭=양원모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재판 중단을 거부한 브라질에 '50% 관세'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이하 현지 시각) 자신의 소셜 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브라질산 수입품에 오는 8월 1일부터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4월 적용했던 10% 기본 관세에서 무려 40%p나 인상된 수치로 필리핀(20%), 브루나이(25%) 등 함께 발표된 8개국 중 압도적으로 높은 세율이다.
트럼프는 서한에서 관세 부과의 핵심 이유가 정치적 동기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쿠데타 모의 혐의 등으로 재판받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기소를 "마녀사냥"이라 규정하며 "전 세계에서 매우 존경받는 지도자였던 보우소나루에 대한 대우는 국제적 수치"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재판은 열려서는 안 되며 즉시 끝내야 한다"며 "나도 잘 아는 일이다. 보우소나루를 그냥 놔둬라"라고 브라질 사법부에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룰라 대통령은 엑스(X)를 통해 "브라질은 독립된 기관을 갖춘 주권 국가이며 외부에서의 부당한 모욕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보우소나루 사건은 브라질 사법부의 고유 책임"이라고 일축했다.
룰라 대통령은 "쿠데타 모의자에 대한 사법 절차는 오직 브라질 사법부의 관할"이라며 "일방적 관세 인상은 경제 호혜주의법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고 보복 조치를 경고했다. 브라질 외교부도 주브라질 미국 대사대리를 초치, 서한 내용을 규탄하고 "모욕적이며 허위 정보가 담겼다"며 공식 수령을 거부하는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양국 갈등의 중심에 있는 보우소나루는 2022년 대선에서 룰라에게 49.1% 대 50.9%로 근소하게 패배한 뒤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지지자들은 2023년 1월 8일 브라질리아의 대통령궁, 의회, 대법원을 습격해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를 연상시키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후 보우소나루는 군부 쿠데타 모의 및 룰라 암살 계획 혐의로 기소됐고, 2030년까지 공직 선거 출마가 금지됐다.
트럼프와 보우소나루의 유대는 각별하다. 2019년 백악관 회동에서 트럼프는 그를 "브라질의 트럼프"라 칭하며 우호를 다졌고, 보우소나루는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룰라 정부에 경제 제재를 가해 나의 정치 복귀를 돕길 바란다"고 표명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관세를 이용해 다른 국가의 형사 재판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만능통치약'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가 관세 위협을 외교적 압박 카드로 활용한 것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초 콜롬비아가 자국 출신 불법 이민자 수용을 거부하자 관세로 위협했고, 결국 콜롬비아가 이를 수용하며 관세를 피한 전례가 있다.
한편, 브라질 경제계는 비상이 걸렸다. 브라질 산업연맹(CNI) 회장은 이날 현지 언론에 "브라질 산업은 미국 생산 체계와 깊이 연관돼 있어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조치로 브라질 GDP가 0.3~0.4%p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관세 폭탄은 브릭스(BRICS)에 대한 경고로도 해석된다. 트럼프는 지난 6일 브라질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직후 "반미 정책에 가담한 국가엔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