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장 나와" '노란봉투법 통과' 기대감 속 목소리 커지는 하청 노조들
삼성전자 협력사 이앤에스 노조, 원청 직접 개입 촉구 통상임금 판결 이후 하청 노동자들 "원청이 진짜 사장" 주장 재계 "산업 생태계 붕괴" 우려... 중소기업들 '샌드위치' 신세
[더퍼블릭=양원모 기자]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 기대감 속 하청업체 노동조합들이 노사 협상에 원청의 직접 개입을 촉구하는 등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반도체 웨이퍼 박스 관리 하청업체 이앤에스 노조는 지난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원청 삼성전자의 직접 개입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앤에스는 삼성전자 기흥·화성 캠퍼스에서 반도체 웨이퍼 운반 용기 세척 업무를 담당하는 250여 명 규모의 중소기업으로, 노조는 2024년 8월 전국금속노조 이앤에스지회로 설립됐다.
핵심 쟁점은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이다. 노조는 대법원 판시에 따라 400% 수준의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전액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사측은 통상임금 전면 적용 시 연간 인건비 부담이 15억원 이상 늘어나 지난해 영업 이익(6억원)을 250% 초과한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도 지난 19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현대차그룹이 간접고용 노동자의 진짜 사장"이라며 직접 교섭을 촉구하는 기자 회견을 열었다. 같은 날 한화오션에서는 90일 넘게 이어진 조선 하청 노조의 고공 농성이 일단락됐다. 한화오션이 2022년 제기한 47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 취하를 추진하고 하청 노사가 임금 인상에 합의하면서다.
이런 움직임의 중심에는 하청 노동자의 교섭 상대방에 원청을 포함시키고, 노조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이 있다. 이 법안은 2014년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에게 법원이 47억원의 배상 판결을 내리자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성금을 보낸 데서 비롯됐다.
노란봉투법은 21·22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됐으나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가 올해 3월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의 노동 3권 강화 등 더 강력한 내용을 담아 재발의됐다.
재계는 법안 통과 이후 산업 현장에서의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사내 하청업체는 150여 곳, 현대차는 80여 곳에 달한다. 교섭 결렬로 수많은 파업이 발생하면 원·하청 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은 모든 문제를 실력 행사로 해결하려는 관행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란봉투법이 강행 처리되면 원청은 국내 협력업체와 거래를 끊거나 해외 이전을 검토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경기 침체 상황에서 중소 협력업체의 연쇄 도산과 국내 산업 공동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중소 제조업체들 역시 난감한 입장에 처했다. 대법원 판결로 통상임금 체계를 재편해야 하지만, 노조가 정치권과 연대해 원청을 압박하면 하청업체만 희생양이 된다는 우려가 크다. 기업의 지급 여력과 단체교섭 과정을 존중하지 않으면 노사 관계가 파행될 수밖에 없으며, 사용자 개념의 무리한 확대는 법적 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은 경영 현실을 무시한 요구와 정치권이 연계된 투쟁은 중소기업 생태계 전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