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호랑이’ 키우는 중국에 뒤쳐지는 한국...R&D 패권 격차 ‘뚜렷’

2025-05-08     이유정 기자
[사진=연합뉴스]

 

[더퍼블릭=이유정 기자] 중국이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유망한 기술 기업과 인력을 대대적으로 육성하는 등 기술 패권 경쟁에서 가속도를 내는 반면, 한국은 예산 나눠 먹기에 머물며 연구·개발(R&D) 효율성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의 이공계 인재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좇아 대거 의대로 진학하는 동안, 중국은 최첨단 기술 분야에 인재를 몰아주며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기술 자립과 세계적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중국의 전략은 이미 상당한 결실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R&D 전략은 단순한 예산 배분이 아닌 철저한 성과 중심 구조로 작동한다. 정부는 민간 시장에서 기술력을 입증한 기업이나 연구팀에 집중적으로 예산을 지원하며, 실패에 대한 과도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선시후보'(先試後補), 즉 먼저 시험하고 결과가 입증된 이후에 지원하는 방식은 중국 정부가 채택한 실용적인 접근이다. 이 방식은 우수한 인재를 기술 산업에 유인하고, 유망한 스타트업의 급성장을 견인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 AI 시장은 텐센트, 바이두,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등 대기업이 주도했지만, 최근에는 딥시크의 성공으로 ‘제2의 딥시크’, 즉 ‘AI 호랑이’로 불리는 유망 스타트업 육성에 힘을 싣고 있다. 즈푸AI, 미니맥스, 바이촨AI, 문샷AI, 스텝펀, 01.AI가 대표적인 ‘여섯 마리의 AI 호랑이’로 꼽힌다.

이 가운데 즈푸AI는 칭화대 출신 장펑 CEO가 2019년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자체 개발한 거대언어모델(LLM)로 두각을 나타내자, 중국 지방정부는 이후 2년간 9000억원 가까운 자금을 투자했다.

미국 정부가 이 회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릴 정도로 기술력을 갖춘 이 기업은 4조원 이상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고 있으며, 올해 IPO를 추진 중이다. 즈푸AI의 대형 모델은 월간 사용자 수가 700만 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중국 증권가는 이 모델이 소비자용 하드웨어와의 결합을 통해 핵심 제품군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촨AI 역시 주목받는 스타트업이다. ‘바이촨AI’는 2022년 설립된 이 회사는 불과 2년 만에 기업가치가 28억달러(약 4조원)를 넘었다. 지난해 5월에는 차세대 AI 모델 ‘바이촨4’를 발표하고, 첫 AI 어시스턴트 ‘바이샤오잉’을 출시했다. 특히 의료 분야로의 확장을 본격화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바이촨AI는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대형 IT 기업뿐 아니라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주요 지방정부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특히 지난해 7월에만 1조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해 중국 내 AI 스타트업의 대표 주자로 자리 잡았다.

중국은 이처럼 경쟁에서 증명된 기업에 자금을 몰아주는 구조를 민간에 국한하지 않고,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함께 작동하는 매칭 펀드 시스템으로 확대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유망 기업을 선제 발굴하면, 중앙정부는 같은 금액을 매칭해 공동 투자에 나선다. 이 구조는 단순한 행정 주도가 아닌, 시장과 정책이 결합한 전략적 투자 모델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한정된 예산을 대학, 기업, 프로젝트 등으로 분산시키는 ‘나눠 먹기식’ 지원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R&D 지원 시스템은 예산 편성 과정이 기획재정부의 통제 아래 있어 특정 분야에 유연하게 예산을 늘리기 어렵고, 기술 내용을 이해시키는 과정도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인공지능, 반도체, 우주항공 등 첨단 기술 분야에 유연하고 민첩한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 같은 전략 차이는 유니콘 기업 수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유니콘 기업 수는 중국이 637곳으로, 763곳의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대에 한국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지금과 같은 분산적 예산 운영 구조를 탈피하고, 성과 기반의 전략적 R&D 투자 구조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단순한 예산 증액이 아닌, 시스템 전체의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