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국민의힘 보선 참패, 예방주사 될까?…'총선 전략은 오직 민생'
[더퍼블릭=김영일 기자] 여의도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됐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귀결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전략공천으로 내리꽂은 진교훈 후보가 56.52%(13만 7066표)의 득표율로,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선거에 복귀할 수 있었던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득표율 39.37%, 9만 5492표)를 17.15%포인트(4만 1574표) 차로 따돌렸다. 민주당이 선거 전략으로 내세웠던 윤석열 정부 심판론이 통한 것이다.
승장(勝將)인 이재명 대표는 지난 10일 보궐선거 투표가 끝난 직후 당 지도부가 모인 단체 대화방에 “다행히 승리하더라도 선거 결과에 대해 민주당의 승리가 아닌 국민의 승리, 민생파탄에 대한 국민의 심판으로 규정해야 한다”며 “승리에 따른 축제 분위기는 절대 안 되고 민생‧민주‧평화를 지키지 못한데 따른 더 큰 반성과 각오의 계기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족함과 책임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더 치열하게 처절하게 민생, 경제, 안전,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분골쇄신하겠다는 진정성 있는 다짐이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승장의 이런 메시지는 총선이라는 총성 없는 전쟁을 앞두고 작은 전투에서의 승리에 도취돼선 안 된다는, 당내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패장(敗將)인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책임론에 직면했고, 나아가 용산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이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물론 책임론을 제기하는 일부 무리들이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무슨 역할을 했는지 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아무튼 정부여당은 이번 보선에서 드러난 민심의 분노를 ‘와신상담(臥薪嘗膽-목적 달성을 위해 온갖 고난과 괴로움을 참고 견딤)’의 계기로 삼아 내년 총선을 준비해야 할 것인데, 국정운영 기조를 철저히 민생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더퍼블릭>이 총선이라는 총성 없는 전쟁을 앞두고 치러진 전투(강서구청장 보선)에서 정부여당이 참패한 원인에 대해 짚어봤다.
입으로만 나불거리는 트로이목마
국민의힘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당내 일각에서는 패장인 김기현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흔들기’에 나섰다. 그 대표주자는 전직 당 대표를 지낸 이준석 씨와 일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다.
보선 선거운동이 진행될 당시부터 여러 라디오 방송에 나가 마치 김태우 후보가 패배하기를 바라는 듯한 뉘앙스의 언급들을 쏟아내더니, 물들어 왔을 때 노 젓듯 실제로 김 후보가 참패하자 온갖 여론전으로 지도부를 흔들고 있다.
이준석 씨가 ‘대통령 만드는 게 꿈’이라했던 유승민 전 의원도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준석 씨와 유승민 전 의원의 비판대로 김기현 지도부와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선거공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정당의 존재 목적은 선거승리라는 점에서 선거 참패는 충분히 비판받을 만한 사안이다.
다만, 이준석 씨와 유승민 전 의원이 당 지도부와 윤 대통령을 비판하기에 앞서 과연 그들은 이번 보선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미력하나마 선거에 도움이 됐을 텐데, 본인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것인 게 눈에 뻔히 보임에도 ‘당이 옳은 방향으로 가게 하기 위한 쓴 소리’라는 포장지를 씌워, 정부여당 비판에만 입을 놀리지 않았나.
특히 전직 당 대표였던 이준석 씨의 경우 보선이 한창 진행 중인 시점에 소위 ‘고춧가루’를 뿌리는 언행을 일삼았다. 이준석 씨는 지난 2일 KBS라디오 ‘주진우의 라이브’와의 인터뷰에서 “18%포인트 차이로 우리 당 김태우 후보가 질 것 같다”고 예견했다. 실제 그 예견이 들어맞자, 여러 미디어에 출연해 ‘거 봐라. 내 말이 맞지 않느냐’는 식으로 온갖 자랑질을 늘어놓고 있다.
‘평론가 이준석’이라면 그의 예견 적중을 높이 살 일이다. 하지만 전직 당 대표가 선거가 한창인 시점에 자당의 후보가 두 자릿수로 패배할 것이라 공개적으로 예견하는 게 자랑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안철수 의원의 바람대로 이준석 씨를 제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XX하고 자빠졌네’라는 발언을 확산시켜 민주당으로 하여금 ‘안철수 막말’ 성명을 발표하게 한 빌미를 제공한 것을 보면, 과거 홍준표 대구시장이 꼬집었던 바, ‘입으로만 나불거리는 트로이목마’가 아닐 수 없다.
대선‧지선 때 국민의힘 지지했던 중도층이 등 돌린 이유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가 참패를 한데 대해 ▶이재명 구속영장 기각 ▶보선 원인을 제공한 김태우 후보 재공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강서구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중도 이탈 ▶김태우 후보의 40억원 애교 발언 ▶민생파탄에 대한 분노 투표 등 여러 원인들이 지목되고 있다.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정부여당 후보의 참패로 귀결됐겠지만, “민주당의 승리가 아닌 국민의 승리, 민생파탄에 대한 국민의 심판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이재명 대표의 메시지처럼 민생파탄에 대한 분노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김태우 후보는 민주당 후보에 2.61%포인트 차로 승리했고, 대선 때 이재명 대표(49.17%)와 윤석열 대통령(46.97%)의 강서구 득표율 차는 2.2%포인트였다. 이는 지난해 대선과 지선만 놓고 보면, 강서구는 여야 박빙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보선에서 진교훈 구청장과 김태우 후보 간 득표율 차가 17.15%포인트나 벌어진건 대선과 지선 때 국민의힘에 투표했던 중도층이 등을 돌렸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그렇다면 대선과 지선 때 국민의힘에 투표했던 중도성향의 강서구민들은 왜 등을 돌렸을까.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이 기각돼서? 보선 귀책사유가 김태우 후보에 있기 때문에? 원래부터 민주당 텃밭인 까닭에? 김행 후보자의 이탈이 상식을 벗어나서? 김 후보의 40억원 애교 발언이 괘씸해서?
중도층은 선거 때마다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을 바꾸는 ‘스윙보터(swing voter)’다. 특정 정당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정치 고관여층과는 다르다. 이들에게 있어 최우선은 먹고 사는 문제다.
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 물가는 어떤가.
지난달 설탕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41.58로 전년 동월 대비 16.9%로 상승, 1년 전과 비교했을 땐 20.7%가 올랐다고 한다. 설탕 값이 오름에 따라 과자와 빵,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이 줄줄이 오르는 슈거플레이션(설탕+인플레이션)이 우려되고 있다.
밀크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 우려도 있다. 원유 값 상승으로 과자와 빵, 아이스크림 가격 등이 잇따라 오르는 것이다.
소금은 또 어떤가. 지난달 소금 물가 상승률은 17.3%로 지난해 8월(20.9%) 이후 1년 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배추 값도 고공행진 중이라, 올해 김장철 물가 비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심지어 2021년 ‘알몸김치’ 논란으로 수입량이 급감했던 중국산 김치에 대한 수입량이 다시 늘고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위생문제가 우려되는 중국산 김치 수입량이 늘고 있을까.
외식물가는 말할 것도 없다. 햄버거 프랜차이즈를 이용할 때 평균 1만원 이상을 지불하는 등 점심 한 끼에 1만원을 지출한지 오래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1만원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외식 메뉴는 김밥·자장면·김치찌개·칼국수 등 단 4개라고 한다.
물가폭등‧공공요금 인상‧서민대출 금리 상향…서민들은 허리띠 졸라매는데, 정부여당은 이념우선주의
고물가도 벅찬데, 서울시는 지하철과 버스 요금을 각각 150원, 300원 인상했고, 신임 한국전력 사장은 전기요금 대폭 인상을 예고했다.
물가 폭등과 공공요금 인상에 서민들은 혀를 내두를 지경인데, 정부는 서민 대출 금리도 인상했다. 지난 8월 30일 자로 주택도시기금대출(국토교통부) 고시금리가 0.3%포인트 일괄 인상된 것이다.
무주택 서민을 위한 전세자금 대출인 버팀목전세자금대출 금리는 2.1~2.7%로, 주택구입용 대출인 디딤돌대출 금리가 2.45~3.3%로 올랐다. 기존 1.2%의 금리를 적용받던 중기청 대출 금리 역시 예외 없이 1.5%로 상향 조정됐다.
벌어들이는 소득은 줄거나 그대로인데, 이처럼 장바구니‧외식 물가 폭등에 이어 공공요금 인상, 서민 대출 금리까지 상향조정되면서 서민들은 그야말로 허릴 띠를 졸라매야할 만큼 먹고 살기가 팍팍해졌다.
물론 물가폭등과 공공요금 인상 등은 집중호우와 국제유가 상승, 미국 기준금리 상향 등 대내외적인 상황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정부여당이 물가폭등 타개책 등 민생에 대한 메시지를 내는 게 아니라 ‘홍범도 흉상 철거’ 등 이념우선주의에 몰두하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보니, 그 무엇보다 먹고 사는 문제에 민감한 서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그 분노가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발현된 것이다.
‘민생파탄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란 야당 대표의 메시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념우선주의→철저히 민생 중심으로 국정 기조 전환해야
국내에 2012년 11월 개봉된 ‘스윙보트’란 미국 영화가 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미국 뉴멕시코주의 작은 도시에 사는 별 볼일 없는 중년 남성 버드 존슨(캐빈 코스트너)은 초등학생 딸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 당일 회사에서 잘려 술로 저녁을 보내다 투표를 하지 못한다.
딸은 정치에 관심 없는 아빠 대신 투표를 하기로 결심한다. 아빠 몰래 서명을 하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 안까지 들어갔으나 갑작스러운 정전이 발생했고, 당황한 딸은 투표용지 절취선만 챙긴 채 황급히 도망가는 등 투표를 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버드의 표는 무효표가 됐고 10일 뒤에 재투표할 권리가 주어줬는데, 공교롭게도 선거에서 맞붙은 두 명의 후보가 정확히 같은 득표수를 기록함에 따라 버드의 한 표가 차기 대통령의 당락을 결정하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사태가 벌어진다. 버드의 한 표로 당락이 좌우될 대통령 후보들은 버드가 사는 시골 마을까지 찾아가 본인을 뽑아달라고 호소한다.
버드는 본인의 투표로 차기 대통령의 당락이 결정되는 권리가 주어줬음에도,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누구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본인 삶이 달라지는 건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딸에게 말한다. 하지만 결국 개과천선한 버드는 전국적인 관심 속에 후보를 고르고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 된다.
버드는 개과천선하는 과정에서 두 대통령 후보와의 토론회를 제안한다. 토론회를 통해 마음에 드는 후보를 선택하기로 한 것인데, 이 때 버드는 어느 한 유권자가 본인에게 보낸 편지를 읽는다.
“제게 첫 번째 질문을 던져주신 분은 켄터키주 헨더슨에 사시는 피터 맨티스씨입니다. 버드 존슨 씨에게. 저희 부부에겐 세 딸이 있습니다. 저희는 생계유지를 위해 두 군데서 일을 합니다. 그래도 어떨 때는 적자가 나기도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데도 가족을 보살필 수 없다면 가장으로서, 한 남자로서 자신에게 회의가 들기 시작합니다. 제 경우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 나라를 위해 싸웠고, 그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두렵습니다. 후보자에게 물어봐주세요. 우리가 세계 최대의 부국이라면 어째서 살기 힘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겁니까?”
어느 나라든 서민들에겐 먹고 사는 문제가 최우선일 것이다. 그들은 정부를 향해 끊임없이 묻는다. 영화의 편지내용처럼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먹고 살기가 힘드냐고.
강서구청장 보선 다음날이었던 지난 12일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결과를 존중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 성찰하면서 더욱 분골쇄신 하겠다”면서 “수도권 등에서 국민의 마음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맞춤형 대안을 마련하겠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더욱 낮은 자세로 민심에 귀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겸허히 수용한다”며 “투표 방향을 결정지은 기준은 어디까지나 민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국민 뜻에 더욱 부합하도록 경제와 민생 회복에 모든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번 보선 참패를 계기로 정부여당은 이념우선주의가 아닌 철저히 민생 중심으로 국정운영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총선 결과는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 결과와 비슷하지 않겠는가. 물가를 안정화시킨 뒤, 반국가세력과의 이념전쟁을 본격화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지난 12일 <동아일보>의 이기홍 대기자는 칼럼을 통해 정부여당의 총선 승리 전략을 제시했다. 해당 대목을 소개하자면 “총선 승리 전략? 아주 간단하다. 당선될 사람을 공천하면 된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대통령이 공천에서 손 떼고 ‘당선 가능성 위주로 공천하라’고 당에 엄명하면 된다.”
그리고는 “대통령은 먹고 사는 데만 집중하고 국민들과 소통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사진 및 이미지=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