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신의 시대

맹신의 시대

  • 기자명 박연희 칼럼니스트
  • 입력 2016.12.2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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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구쟁이 스머프 화면 캡쳐

80년대 초반에 <개구쟁이 스머프>라는 TV 만화 시리즈가 방영되었었다. 스머프는 파란색 난쟁이들의 이름이다.



이 만화에는 ‘불만’, ‘게으름’, ‘욕심’, ‘허영’ 등의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스머프들과 인자하고 지혜로운 아버지 같은 리더, 파파 스머프가 등장한다. 각각의 캐릭터가 상징하는 대로 이름도 똘똘이, 투덜이, 허영이, 익살이 등이다. 그런데 이 파란 난쟁이들의 캐릭터와 삶의 모습을 두고 어처구니없는 논쟁이 발생했다.



이 작품이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전 세계 30개국에서 방영되기 시작한 때는 1981년이었다. 냉전시대였던 당시 동독과 구소련, 폴란드 등의 공산권 국가에서는 “스머프는 자본주의국가의 선전물이다.”, “각각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은 자본주의적이다.”라며 방영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그런데 냉전이 끝난 21세기 들어 오히려 스머프가 사회주의 이념 만화라는 논란이 불붙었다. “스머프는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만화다!”, “파파 스머프의 붉은 옷과 덥수룩한 수염은 칼 마르크스를 연상시킨다.”, “공동생활에 익숙한 캐릭터들은 개인보다 집단을 강조한다.”



이 사회주의 만화 논란의 최초 진원지는 1998년 미국의 한 만화 마니아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재미삼아 올린 짧은 에세이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스머프에 나타난 정치․사회적 테마’라는 제목의 이 에세이에는 ‘파파 스머프는 칼 마르크스를 나타낸다.’, ‘경제적으로 스머프 마을은 폐쇄시장의 성격을 띤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논쟁에 대해 원작자 피에르 클리포드는 이렇게 말했다. “스머프는 나와 주변사람들의 특징을 담아 캐릭터로 표현한 것이다. 욕심 많은 가가멜 같은 존재, 매사 투덜대는 투덜이 스머프, 잘난 척하는 똘똘이 스머프가 ‘나’라는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다.”



전 세계 아이들에게 사랑받았던 만화영화 한 편에 대해 어째서 한 때는 공산권 국가에서 자본주의의 이념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상영금지 조치가 내려지고, 나중에는 그 반대의 상황으로 이념 논쟁이 벌어졌을까?



스머프 논쟁은 인간이 내리는 판단, 그리고 그에 근거한 믿음이 얼마나 사실(Fact)과 동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스머프 논쟁은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과도 오버랩 된다. 천안함 사건의 경우 세계 각국 전문가들의 조사 끝에 북한 어뢰에 의한 침몰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 또는 대한민국 권력이 꾸민 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도대체 이들의 맹목적 믿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마이클 맥과이어 교수가 쓴 책 『믿음의 배신』에는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의 부모를 친부모가 아니라고 믿는 한 내담자의 이야기를 통해 믿음의 맹목성에 대한 진실을 말해준다.



친부모라는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믿음을 끝내 바꾸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긴 시간 연구 끝에 맥과이어 교수는 이것이 뇌의 타고난 기본 특성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뇌 속에 복잡한 정보가 들어오면 뇌는 천천히 움직이고 정보처리 속도도 느려진다. 모호함과 불확실성 탓에 생각할 게 많기 때문이다. 이때는 에너지도 많이 소비된다. 때문에 뇌는 복잡한 정보를 단순화해 하나의 믿음으로 묶어버림으로써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여 생리학적으로 유쾌한 상태가 되려 한다. 만약 이미 구축한 믿음 시스템을 부정하는 다른 정보가 뇌에 들어오면, 해당 정보를 거부함으로써 현재의 효율적 시스템을 지켜내려 한다.



이것은 실험에서도 증명되었다. 한정된 문장만 말하는 컴퓨터와 대학생을 채팅하게 하면서 채팅 상대가 컴퓨터임을 숨겼다. 90%의 대학생은 인간과 채팅했다고 생각했고, 나중에 컴퓨터라는 증거를 대도 80%는 이를 거부한 것이다. 자신의 믿음이 틀렸다는 증거보다는 그것을 강화하는 증거를 선별해 기억하는 시스템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뇌의 에너지 사용을 효율화하는 방식으로 빠른 판단을 내리고 상대방과 융화해 집단사회를 형성시켰다. 따라서 ‘지능보다는 믿음이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서 이와 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뇌에 들어오는 정보가 너무 많아진 것이다. 뇌는 본능적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심도 있게 분석하기보다는 효율적으로 단순하게 변환된 형태, 즉 ‘믿음’으로 저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과 SNS 등의 발달로 사실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모순적으로 인간은 오히려 자신의 신념과 믿음에 따라서 현상을 바라볼 뿐, 진실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로 인한 사회 갈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개인과 사회에 던질 수 있다. 정치적 신념, 종교적 믿음 등으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분열되어 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맹목적 믿음에 근거한 음모론과 정치적 신념에 따른 왜곡된 주장과 정보들이 사람들을 선동하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는 참 슬픈 일이지만, 이와 관련된 부정확하고 과장된 추측성 보도와 소위 ‘찌라시’들로 인한 폐해는 더 클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맥과이어 교수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끊임없는 의심’이라고 결론지었다. 자신의 판단과 믿음을 최대한 의심하고, 교육을 통해 뇌 작동 원리를 인지하고 현재, 과거, 미래를 하나로 꿰어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결론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맹목적 믿음이 한 개인의 삶과 사회 전체에 백해무익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내가 아는 것, 내가 믿는 것만 옳다는 생각은 여기서 그치자. ‘카더라’ 통신에 무턱대고 동조하며 주변에 성급하게 확산하지 말자.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한번 쯤 의심해보자. 나부터 그렇게 해 볼 생각이다.


글/ 박연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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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퍼블릭 / 박연희 칼럼니스트 jane95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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