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한쪽도 나눠 먹는 마음

콩 한쪽도 나눠 먹는 마음

  • 기자명 박연희 칼럼니스트
  • 입력 2016.11.2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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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한쪽도 나눠먹으라’는 속담이 있다. 콩 한쪽은 그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적은 양이다. 한 사람이 그냥 한쪽을 통째로 먹으나 두 사람이 반쪽씩 나누어 먹으나 어차피 누구의 배도 채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콩 한쪽도 나눠 먹으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배고픔도 같이 느끼고, 만족도 같이 느끼자는 공동체적 유대감을 위한 것이 아닐까 한다. 가정이든 국가든 공동체의 규모가 어떠하든지 구성원의 일부가 굶주리고 고통 받는 상황 가운데에서 나만 배부르고 행복한 상태란 있을 수 없다. 그런 상황이 일시적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지속된다면 결과적으로 공동체는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콩 한쪽도 나누는 마음은 공존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지구상에는 어마어마한 삶의 격차가 존재한다. 어느 곳에서는 아이들이 마실 물조차 없는 기아 속에서 고통 받으며 죽고, 동시에 어느 곳에서는 멀쩡한 음식물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 나라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식도락을 위해 누군가의 한 달 생활비에 해당하는 돈을 한 끼 식사비로 지불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사회든지 빈부격차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에서도 결국 빈부격차를 막지는 못했다. 자신의 타고난 능력과 정당한 노력으로 얻은 결과물을 누리는 것은 마땅하다.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하는 사회에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누리는 것도 결코 부당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공동체의 구성원인 누군가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없는 환경과 조건 속에 방치되고 있다면, 그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이웃의 고통을 무심히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어찌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국가는 복지정책을 통해 국민들의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보장해주고자 한다. 그러나 복지제도가 구성원의 구체적인 필요를 모두 알 수도 없을뿐더러 안다고 해도 그것을 모두 감당할 수도 없다. 또한 극심한 빈부격차로 계층 간의 갈등과 대립이 발생한다면 복지정책만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국가의 복지정책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부라고 생각한다.


기부는 개인이나 단체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현금이나 물품을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보육원이나 특정인 등에 대한 직접 후원, ARS 등 언론기관을 통한 후원, 월드비전 같은 모금단체를 통한 후원, 어려운 이웃을 위한 바자회나 일일찻집 참여, 구세군 후원, 적십자 회비납부, 길거리 적선 등과 같이 기부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리고 기부의 형태가 이처럼 다양한 것만큼 기부를 하는 사람들의 동기도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부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동기일 것이다. 물론 때로는 정치인의 이미지 메이킹 또는 기업의 홍보를 위한 기부도 존재한다. 그러나 진정한 기부는 기부의 정의에서 보듯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누군가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자발적 동기에 의한 것이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는 행위는 결국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기초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기부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양식 중 하나라는 점에서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는 소중한 행위이다.


즉 기부는 자발적으로 자원배분의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결과적 측면뿐만 아니라 보편적 인류애와 공동체적 유대감을 사회 구성원 간에 서로 확인하게 한다는 점에서 적극 권장되어야 한다.


때문에 선진국들은 여러 가지 정책을 통해 기부를 장려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다양한 기부 형태가 등장하고 기부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기부문화가 사회 전체적으로 성숙되지는 못한 것 같다.


2011년 ‘나눔문화에 대한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13세 이상의 인구 중 지난 1년간 기부경험이 있는 사람은 약 36.4%로 조사되었다. 미국의 경우 약 89%의 국민이 자원봉사 등을 비롯한 기부활동을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은 매우 소극적인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부에 소극적인 것일까? 위 사회조사에서는 기부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기부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그랬더니 응답자의 62.6%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18.6%는 기부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8.9%는 기부단체를 신뢰할 수 없어서라고 답했다.


조사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들 대부분이 기부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큰 것 같다. 여기엔 기부의 금액이 커야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선입견도 전제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18.6%의 답변자들 중에는 어차피 많은 액수를 기부할 여유가 없다면 자신의 기부가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기부 자체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관심을 두지 않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나눔문화에 대한 사회조사 문항 중에는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포함돼 있었다. 이 질문에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답변이 ‘사회지도층, 부유층의 모범적 기부 증대’였다. 물론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기부가 일반시민들보다는 부자들의 몫이라는 인식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기부가 갖는 의미는 단지 기부로 인한 경제적 효과나 유용성만으로 측정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기부는 콩 한쪽을 나눠먹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마음의 실천이 기부로 나타난다면 기부는 기부를 하는 사람의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나아가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기부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공동체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 기부의사와 그 실천을 이끌어내야 한다.


모든 일이 그렇다. 처음이 어렵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첫 기부가 어렵고, 공동체의 경우에는 다수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어렵다. 그러나 일단 시작되고 나면 그 다음엔 훨씬 수월해진다. 주먹 크기의 눈덩이를 불릴 때 처음엔 손으로 직접 덧붙이는 수고가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크기가 된 후엔 굴리기만 해도 눈(雪)이 눈(雪)을 불려갈 테니까.


그동안 기부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지만, 사실 필자도 기부에 첫발을 떼어 놓는 데에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 2012년부터 아이들과 난민을 돕는 단체에 매달 작은 액수의 후원을 하고 있다. 막상 이렇게 기부를 시작하고 나니, 이렇게 쉬운 일을 왜 그토록 미뤄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부의 액수는 매달 1천원도 좋고, 5천원도 좋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을 기부로 표현하면 된다. 기부는 돈 많은 부자의 몫이 아니라 콩 한쪽도 나눠먹을 마음의 여유를 가진 당신과 내가 감당할 몫이기 때문이다.


글/ 박연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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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퍼블릭 / 박연희 칼럼니스트 jane95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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