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우크라이나 사태의 지정학, 역사, 문화적 이해와 한민족 연관성–1부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우크라이나 사태의 지정학, 역사, 문화적 이해와 한민족 연관성–1부

  • 기자명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 입력 2022.01.2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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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벙어진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지정학, 역사, 문화적 이해와 한민족 연관성 학문적 관점에서 분석해 본다.(2022년 1월 28일자)

▲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우크라이나 사태의 지정학, 역사, 문화적 이해와 한민족 연관성1

(2022년 1월 28일자)(출처=유튜브)

[더퍼블릭 =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윤명철 동국대학교 명예교수가 유튜브 ‘역사대학’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의 지정학, 역사, 문화적 이해와 한민족 연관성’을 학문적 관점에서 역사학적 해설을 담아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을 분석해 본다.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2022년 1월 28일자 주요 내용]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내전이 일어났었고, 지금 2022년 1월은 러시아가 군대를 국경선에 집결시켜서 위협하는 중이다. 우크라이나의 서부지역 주민들과 민족주의자들은 적극 항전을 원하고, 정부와 군대는 전투훈련을 하는 등 결사항전을 대비 중이다. 한편 이러한 사태의 발생에 상당한 책임을 가진 서양 세력들은 강경한 태도를 취한다고 했고, 미국은 파견병력이 대기중이라고 발표했지만, 아직까지는 으름장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정말로 러시아의 침공이 현실화되고, 서양세력이 군사행동을 취한다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은 분명하고, 우크라이나는 동서로 분단 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 분쟁은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경제, 외교 등에도 부정적인 요소로 작동할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하여 관심가질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사태를 몇 가지 관점에서 해석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첫째, 인간으로서의 슬픔이다. 전쟁이 발생하면 희생당할 사람들, 특히 어린아이들이 삶과 생존을 위협받는 일이 발생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러한 사태들이 과거, 현재의 한민족이 겪는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고대에는 한 뿌리에서 출발했고, 이후 경쟁과 적대관계를 맺으며 불행을 자초해왔고, 우리는 그들의 식민지가 됐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루스’ 라는 종족에서 출발했고, 키에프 공국에 속했으나 갈등관계에 있었고, 결국 러시아가 세워지면서 우크라이나는 편입됐고, 훗날 쏘비에트 연방에 속했다가, 1991년에 쏘련이 붕괴된 후에야 독립했다. 그리고 현재도 동부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들은 친러적인 성향을 강하게 갖고 정부에 대항하며, 러시아는 이들을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다시 영향권으로 끌어들이고, 일부 영토를 빼앗으려는 중이다. 뿐 만 아니라 일본이 우리 역사를 왜곡했듯이,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듯이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역사를 자국 중심으로 왜곡하였다.

셋째, 국제관계의 실상과 구조를 이해하는 교과서로 삼을 필요가 있다. 

 

국제관계는 단순한 두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들과 직접 간접으로 얽혀진 복합성을 갖고 있다. 또한 철저하게 이해관계에 따라서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전략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집단의 생존을 걸고 벌어지는 일이므로 관념적이거나 명분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매우 냉정하고, 실제적인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고려 말 이후로 국가를 운영할 때 독자적이거나 자율적인 면이 부족했다. 강한 나라에게는 무대응을 국가정책으로 설정한 탓에(事大交隣)국제관계의 주역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국제관계의 실상과 메카니즘을 인식하고 파악하는데 서툴고, 전략적인 정책을 펴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럼 현재 발생하는 우쿠라이나 사태는 왜 발생했을까?

필연적으로 지정학적 조건, 지경학적 조건, 지문화적 조건, 지심학적 조건이 각각의 방식과 비율로서 참여하고 작동한 결과물이다. 필자는 역사학자라는 한계로 인하여 지정학적 조건과 지경학적 조건에 대해서는 기존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필자의 사관과 지식을 보완해서 원론적으로 언급을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정학적 조건으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국경선 갈등 및 우크라이나의 독립 의지, 동부영토의 고수이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역을 약 250년 동안 장악했던 몽골의 킵차크 칸국은 자체 분열 및 러시아인들의 저항으로 붕괴됐고, 모스코바 공국이 강국으로 군림했다. 이어 1721년 10월에 모스코바 공국의 피터(표토르)대제가 러시아 제국을 선포했고, 루스(Rus. Ruth) 대공국인 키에프는 이 체제에 예속됐다. 그 후에 두 지역은 계속 갈등을 벌였고, 쏘비에트가 완성되기 직전에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운동도 펼쳐졌었다.

둘째, 러시아의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잔해와 유럽의 NATO가 벌이는 군사적인 경쟁이다. 

 

러시아는 피터 대제 이후에 지정학적으로 숙명이 있었다. 북쪽은 발트해 진출(스웨덴 전쟁, 핀란드 예속), 서쪽은 유럽 방어선 구축(나폴레옹, 히틀러의 침공), 남쪽은 흑해어와 지중해 진출이다. 1991년에 쏘비에트 연방(USSR)이 붕괴되면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발트 3국은 독립했고, 동유럽의 폴란드, 항거리, 체코 등은 위성국의 지위에서 벗어났다. 유고슬라비아 연방도 해체되어 세르비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등으로 분리됐고, 발칸반도는 한때 민족과 종교충돌이 인종청소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심각했었다. 그런데 이들 나라들은 다수가 NATO 회원국이 됐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되면 러시아는 완충지대를 상실하면서 군사적으로 방어체제가 취약해지므로 자위책을 강구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과거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독일의 히틀러가 모스코바 근처까지 침공했던 사실에 대한 트라우마도 크게 작동할 수 밖에 없다.

셋째, 러시아와 투르크(터키) 간의 흑해 및 크림반도를 둘러싼 해양력 갈등과 역사의 짙푸른 앙금이다. 

 

러시아는 오스만 투르크와 6차의 전쟁을 벌였는데, 이 전쟁은 대륙세력인 러시아의 해양진출을 막으려는 영국 등의 의도가 크게 작용한 결과이다. 1853년 7월에는 러시아가 공격해서 함대 전투에서 승리했다. 1854년 9월에는 영국·프랑스·투르크 연합군이 크림반도를 공격했다. 이 때 영국과 프랑스 함대는 극동의 캄차카 반도를 공격했다. 1877년 4월 24일에도 투르크와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그런데 2014년에 러시아는 흑해함대의 본거지인 세바스토폴항이 있는 크림반도를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빼앗았다.

넷째, 쏘비에트를 계승한 러시아와 미국의 헤게모니 쟁탈전이다. 

 

그 밖에도 지경학적으로는 천연가스와 석유 등의 에너지자원, 식량인 곡물문제가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러한 현실적인 요인 외에도 지문화적, 지심학적 환경에 따른 문제들이 있다. 좁게는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의 역사이고, 넓게는 러시아 및 유럽 투르크(터키) 간에 있었던 역사이다.

우크라이나는 위치상 유라시아 동서의 세력들, 남북의 세력들이 통과하거나 정착하는 공간이므로 종족과 문화, 역사상이 매우 복잡하다. 따라서 지금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또 다른 형태의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지역은 한민족과 연관이 적지 않다. 생물학적으로, 언어적으로 연관이 약간 있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스키타이 문화로 표현된 청동기 문화, 기마 문화는 원(고)조선, 고구려, 신라에 영향을 적지 않게 끼쳤다.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해설 관련 서적-윤명철 교수 저서, ‘동아시아의 영토분쟁과 역사갈등 연구’2019, ‘유라시아 세계의 이해와 활용’2020, ‘유라시아 세계와 한민족’2020, ‘천산을 넘어 알타이로드를 찾아서’2020, ‘천년 서사의 영토 극동 시베리아를 가다.’2020 등]
 


윤명철 교수 / ymc04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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