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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아이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
"문제 아이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
  • 한국 최면치유 연구소장 김영국
  • 승인 2016.12.13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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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너의 소유물로 여기지 말라

문제아이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

 

 

 

부모 입장에서 이 격언에 대해서 머리로는 충분히 공감하겠지만, 

가슴으로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지도 모른다. 

물론 머리로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끝까지 나는 문제가 없고, 

이 모든 것이 자식때문이라도 말을 하는 부모들이 더러 있다. 

아니, 생각보다 많다. 

말은 그렇다고 하지만 실제 심리는 이 부분을 인정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식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부모들이 있다. 

" 너만 잘하면 돼, 너는 왜 내 속을 썩이니?"

" 내가 너에게 돈을 얼마나 쓴 줄 아니?"

" 조금만 더 참아서 명문대학교 들어가면 되는데 왜이리 정신력이 약하니?"
" 전교1등 하는 니 친구 OO이가 부럽지도 않니? 창피하지도 않니?"

 

 

 

그나마 부모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제서라도 무리한 전쟁을 멈출수 있다면 참 다행이지만, 

여전히 심리적 약자인 아이들에게 폭언, 비난, 비교, 무시, 근심, 걱정을 하면서

아이의 자존감을 깍아내려가고 있다면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녀를 괴물로 만드는 지름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부모인 내가 괴물이 되어버리면

그것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아이도 나중에는 위험한 괴물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부모의 생각, 행동, 마음을 그대로 학습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 부모 뒤에는 문제 아이가 있다라고 말을 한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부모가 우울증에 걸리면 자녀 또한 우울증에 걸리고 삶이 즐겁지 않게 된다. 

부모가 대인공포증이 있으면 그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관계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부모가 근심 걱정이 많으면 자녀는 겁쟁이가 되어버린다. 

부모가 사람을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이라면 자녀 또한 타인에게 그렇게 할 것이다. 

부모가 지나치게 착한 사람(남 눈치 보는)이라면 자녀는 착한아이 컴플렉스에 빠져버릴 것이다. 

부부가 매일 싸우게 된다면 자녀는 인간을 상대함에 있어서 공포를 먼저 느끼거나 싸움을 먼저 하게된다.

 

 

 

 

 

이는 참으로 단순한 논리이다. 

보고 배운대로 된다는 것이다. 

누가 낳았는가?

누가 가르쳤는가?

그리고 누구의 책임인가?

이 아이들이 과연 이 모든 것을 인터넷, 세상, 학교에서 배웠다고 생각하는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순수했던 아기는 이 세상의 시작점을 엄마 아빠로부터 배운다. 

그것이 무의식이 된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 타인을 대하는 마음, 인간에 대한 이해등이 

어릴때 형성이 되어버린다. 

기본적인 인격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뿌리가 건강하지 못하고 썩은 나무는 금세 메말라 간다. 

부모는 뿌리이다. 

학교나 사회는 줄기이다. 

이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나는 열매이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은 절대적일수밖에 없다. 

특히 엄마...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먹고 사는 것에만 급급해하면 안된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식 대학 보내서 편하게 사는 것만 신경쓰면 안된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만들고,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을 존중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수 있도록 같이 고민하고 대화하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 

 

 

 

 

 

나머지는 아이 스스로가 인생을 살아가도록 믿고 허용해주어야 한다. 

부모가 가장 먼저 그만두어야 할 것은 바로 " 소유" 이다. 

인디언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 자식을 너의 소유물로 여기지 말라, 이는 하늘이 너에게 준 선물이다."

소유라는 개념은 단순하게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타인이 따라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자체도 포함한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자식의 인생을 위할지라도 

모든 것을 내 생각대로 맞추기를 바라는 것을 말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을 위한 사랑이자 헌신이라 자위할수는 있을지 몰라도, 

자식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존중해주지 못하고 사랑해주지 못한다라는

심리적 불편함을 느낄수가 있다. 

좋은 부모는 경청을 한다. 

어리석은 부모는 말을 하면서 가르치려 든다. 

경청은 그냥 듣는 것이 아니다. 

허리를 숙여서 그 사람에게 다가서고

진심으로 듣고

눈을 마주치면서 보고

마음의 문을 열고 공감을 하고

왕을 대하듯 정성스런 마음의자세를 갖어야 한다. 

 

 

 

 

 

그러면 자녀의 마음이 거울처럼 확연하게 보인다. 

내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왜 이런 문제들이 생겼는지?

나의 잘못된 부분이 아이를 통해서 그제서야 보이게 될 것이다. 

물론 부모는 사람이다. 

완벽하지가 않다. 

나는 그동안 부모로서 잘못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문제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떳떳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관계를 형성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갖을때 자녀와 손을 잡고 함께 건강한 세상을 한발짝 나아갈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를 향해서 성난 눈빛을 보이게되고, 

아이는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불효자, 형편없는 아이처럼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는 휴화산과 같다. 

언젠가는 한쪽에서 수류탄처럼 터지게 될지도 모른다. 

수류탄의 살상 반경은 약 10미터이다. 

결국 가정전체가 괴로움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부모도 자아성찰을 할수 있는 시간을 갖었으면 한다. 

아무리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먹고는 살았는데 나중에 이런 문제가 터지게 되면 감당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지금 공부 못하는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성인이 되었는데 여전히 온실속의 화초처럼 부모에게 길들여진 자녀가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부모입장에서는 평생 짐 덩어리가 될지도 모른다. 

내가 자녀를 내 맘대로 소유한다는 것은 지금 당장 통제하기 편하고 즐거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중에는 모든 것을 내가 다 알아서해주기를 바라는 마마보이 파파걸이 된다. 

그저 온실속에서 아름답게 핀 꽃이 되기를 바랐는가?

그러면 나는 평생 온실속에서 보호해주고 붙잡아 두어야 한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위험한 세상에서 상처를 받고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 좋은(지혜로운) 부모를 인연으로 만난다는 것은 큰 복이다. 

이 좋은 부모는 돈이 많고, 권력이 있고, 지식적인 배움등이 많아서

자식에게 넘쳐흐를 만큼 지원을 빵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좋은 품성을 가르쳐주고 세상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법을 보여주고,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배려할수 있는 세상속의 자유로움을 보여준다면

그 앞에서는 억만금의 돈에 비할바가 못된다.

돈이 정말로 소중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살아가지만, 

돈은 수단이지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최순실씨는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해주었다. 

돈, 학교, 권력......

과연 그것이 올바른 부모라 할수가 있겠는가?

지금에와서 무엇이 남았는가?

모든 진실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돈으로 포장한 가짜 인생을 산 셈이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죽는다. 

이 관점에서 보면 내가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하다. 

 권력을 쥐고 약자를 무시하고 나만 즐거움에 취해서 살아간다면

그대에게 남는 것은 허무함과 극심한 외로움이 찾아올 것이다. 

 

 

 

 

 

물론 열심히 살아서 돈도 많이 벌고 가족과 풍요롭게 사는 것은 누구나 원하고, 

또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다만 지금 삶의 즐거움이나 행복감이 사라진채 배고픈 돼지처럼 욕심에 취해서 살아서는 안된다.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면 나를 보는 자녀 또한 그것이 세상의 진리인양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조금 차분해져야 한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 거리지 말고 냉정하게

'부모인 나'와 '자녀인 너' 를 볼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서로에게 가장 건강하고 합리적인 타협점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모는 20살까지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20살이 넘으면 그 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 

그 시간까지는 건강한 품성을 가지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힘들때 친구가 되어서 위로해주고, 

자녀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경청해주는등

자녀가 이 사회에서 건강한 성인이 될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머지는 그 자녀가 스스로 헤쳐나가야할 세상이다. 

 

 

당신의 자녀가 지금 어떠한 문제가 있다면

일단 나의 어떤 부분들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작은 답이 나올 것이다. 

자식을 행복하게 도와주는 것이 정작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내 맘대로 내가 편하기 위해서 자녀에게 강요를 하고 내 맘대로 조정하려든다면

당장은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녀가 부모인 나를 자기 맘대로 조종하려고 들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뿌린대로 거두는 법이다. 

그래서 부모는 참 많은 희생, 인내심, 기다림이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듯 싶다. 

 

 

 

 

내 아버지는 매일 술을 드시고 가정을 풍비박산으로 만드셨지만, 

내 어머니는 그 분노를 나에게 한번도 표출하지 않으시고

항상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해주고 사랑해주셨다. 

내가 그 무엇을 하더라도 반대하지도 않으시고 믿고 따라주셨다. 

어릴때는 무관심했던 엄마가 조금 서운했지만, 

지금에와서 보니 내 엄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니라 힘든 방법을 택하셨다. 

자식에 대한 믿음

자기 맘대로 나를 통제하려고 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집안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마음속에는 공부나 잘해서 공무원이 되기를 그토록 바랐지만, 

한번도 나에게 공무원 되라는 소리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으셨다. 

자식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끝까지 믿어주셨다. 

그런 과정속에서 실패도하고 실수도 하고 사고도 많이 쳤지만, 

나를 걱정해줄뿐 화를 낸 적이 없다. 

그 믿음이 나에게는 천군만마와 같은 든든함이 되어서 돌아왔다. 

 

 

 

항상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네가 하고 싶다는데 내가 어떻게 막니?"

그 마음을 알기에 나 또한 인생을 대충살거나 어리석게 살지 않으려고 더욱더 애를 쓰며 살아왔다. 

모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 입장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자녀를 위한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내가 소유하려고 하는 뽕맞는 몽롱한 기분좋은 상태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착각이자 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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